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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새미 리 박사…"인종차별 극복 아이콘이자 '한인 정치력 신장' 전도사"

"오렌지카운티의 큰 별이 졌다." 미국 최초의 아시아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새미 리 박사가 지난 2일 96세를 일기로 타계한본지 5일자 A-1면> 이후 그와 각별한 사이였던 한인 정치인들의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고 리 박사는 올림픽 영웅임은 물론 인종차별 극복의 아이콘이자 일찌감치 한인 정치력 신장 필요성을 강조하고 이에 기여한 전도사였다는 것. 리 박사는 지난 2일 오후 9시30분쯤 뉴포트비치의 한 병원에서 폐렴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38년간 리 박사 내외와 친하게 지내온 미셸 박 스틸 OC2지구 수퍼바이저는 5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신기하게도 2일 밤에 이 박사의 꿈을 꿨는데 그 다음날 부음을 들었다. 참으로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박사는 내가 정계에 입문할 때부터 격려를 아끼지 않았고 선거 때마다 기금모금을 도와주고 내 홍보 사인을 받아가 이웃에게 나눠줬다. 내 수퍼바이저 취임식에도 참석해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고 한인들의 정치력이 커가는 모습을 보며 대견해 한 분이다"라고 말했다. 강석희 전 어바인 시장도 "이 박사는 당신께서 과거 극심한 인종차별을 극복했기 때문인지 15년여 알고 지내는 동안 한인사회 정치력 신장을 돕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내가 2008년 시장선거에 출마하며 지지를 부탁하자 '난 골수 공화당원이지만 한인사회를 위해 당신을 지지하겠다'고 말하고 이를 실천에 옮겼다. 여러 모임에서 날 위해 찬조연설도 했다. 이후 부부동반으로 만나는 가까운 사이가 됐다. 이 박사는 소수계 차별이 만연하던 시절, 자신감과 위트로 이를 극복한 영웅"이라고 말했다. 영 김 가주 65지구 하원의원은 지난 3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고인은 나와 내 가족에게 많은 영감을 준 존재였다. 미망인 로즈와 유가족에게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 박사를 알게 된 것, 그가 내 아이들의 롤모델이 됐던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언젠가 천국에서 그를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린다"고 말했다. 한편, 고인은 지난 2009년 OC 주민 중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이들의 이름을 별 문양에 새긴 화강암이 애너하임 리조트 디스트릭트 보도에 영구보존되도록 하는 프로젝트인 '애너하임·OC 워크오브스타'에 11번째 인물로 헌액돼 한인사회는 물론 OC지역사회에서도 자랑스러운 주민으로 인정받은 바 있다. 그는 2006년 이래 헌액된 총 12명 중 유일한 한인이다. 임상환 기자 [email protected]

2016-12-05

다이빙 영웅 새미 리 별세

이민 가정에서 태어나 편견과 인종차별을 극복하고 올림픽 다이빙 2연패를 달성한 수영 영웅 새미 리 (사진)박사가 지난 2일 별세했다. 96세. 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언론은 리 박사를 "미국을 대표하는 운동 선수"라고 표현하며 사망 소식을 일제히 보도했다. 1920년 프레즈노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극심한 인종차별을 겪으며 수영을 배웠다. 그가 다닌 수영장은 매주 수요일 하루만 비백인 아이들에게 개방됐고 유색인종 아이들이 수영을 마치면 더럽다는 이유로 물을 갈았을 정도였다. LA 소재 옥시덴털칼리지에 진학한 그는 1942년 전국다이빙선수권에 출전해 10m 플랫폼과 3m 스프링보드 종목에서 모두 우승하면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유색인종이 미국 다이빙 챔피언이 된 것은 최초였다.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했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USC 의대에 입학한 후에도 46년 전국다이빙선수권에서 우승하는 등 리 박사는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40년과 44년 올림픽이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무산되면서 리 박사는 의대 졸업 이듬해인 48년에야 첫 올림픽에 출전했다. 그는 28세라는 늦은 나이에 출전한 런던올림픽 남자 다이빙 10m 플랫폼에서 우승, 아시아계 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4년 후 열린 헬싱키올림픽에서도 같은 부문 금메달을 따며 리 박사는 다이빙 역사상 첫 올림픽 2연패를 한 미국인이 됐다. 그는 이듬해 미국 최고의 아마추어 체육선수에게 주어지는 설리번상을 아시아계로는 최초로 수상했다. 그는 53년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에서 3년 동안 미군 군의관으로 복무하기도 했다. 또 그렉 루가니스, 밥 웹스터 등 세계적인 수영 스타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이 같은 공로로 리 박사는 68년 국제 수영 명예의전당과 90년 미국 올림픽 명예의전당에 올랐다. 김준영 기자

2016-12-04

올림픽 영웅 새미 리 박사…박 탄자시리 보건학 교수 '선구자상'

'올림픽 영웅' 새미 리 박사와 보건분야 권위자 소라 박 탄자시리 교수가 영 김 가주 65지구 하원의원이 수여하는 '선구자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아태계 문화유산의 달인 5월을 맞아 내일(23일) 오전 11시부터 2시간 동안 부에나파크 커뮤니티센터(6688 Beach Blvd.)에서 열리는 아시안 커뮤니티 문화공연 행사 주최자인 김 의원은 21일 리 박사와 탄자시리 교수에게 선구자상(Trailblazers)을 수여한다고 발표했다. 김 의원은 "리 박사와 탄자시리 교수는 차세대들을 위한 새로운 길을 개척해 온 선구자다. 두 분의 공로에 감사를 표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밝혔다. 아시아계로는 최초로 1948년 런던 올림픽과 1952년 헬싱키 올림픽 다이빙 종목에 미국 수영대표로 출전, 금메달을 획득하며 다이빙 플랫폼 부문 첫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한 한인 2세 새미 리(92)박사는 한인사회는 물론 주류 커뮤티니에서도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다. 지난 1990년에 미 올림픽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으며 2013년에는 그의 이름을 따서 LA한인타운에 '새미 리 박사 초등학교'가 설립됐다. 지난 2013년 캘스테이트 풀러턴(CSUF)의 '올해 최우수 교수'로 뽑힌 바 있는 소라 박 탄자시리(50) CSUF 보건학 교수는 20여 년에 걸쳐 남가주 아태계(Asian Pacific Islanders) 주민의 유전적 차이와 암 등 질병과의 상관관계를 규명하는 연구를 통해 연방 및 가주정부 관계기관으로부터 1500만 달러 이상의 연구기금을 지원받고 있다. 박낙희 기자

2015-05-21

새미 리 매그닛 초등학교 개교 "꿈을 펼치세요"

'다이빙 영웅' 새미 리 박사의 이름을 딴 '새미 리 박사 의학 및 보건학 매그닛 초등학교(교장 헬렌 김)'가 12일 공식 개교 기념행사를 가졌다. 이날 개교식에는 새미 리 박사를 비롯해 LA통합교육구(LAUSD)의 모니카 가르시아 교육감, 신연성 LA 총영사, 존 페레즈 가주 하원의장, 새미 리 자서전의 저자 폴라 유씨, 홍연아 윌셔센터-코리아타운 주민의회 의원 등이 참석해 축하 인사를 전했다. 새미 리 박사는 이웃에게 인종차별을 당했던 고등학생 시절 일화를 소개하며 행사에 참석한 학생들에게 "여러분 모두는 각자의 꿈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어떤 누군가가 그 꿈을 빼앗아 가게 지켜 봐서는 안 된다"며 "자신이 원하는, 이루고 싶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라"고 말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가르시아 교육감은 "미국 다이빙계의 전설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인 새미 리 박사의 이름은 딴 학교에서 학생들이 건강하고 다양한 배움의 기회를 제공받을 것"이라고 축하했고, 신연성 LA총영사는 "새미 리 박사는 진정한 영웅이다. 학생들에게 많은 동기부여가 될 것"이라며 개교에 의미를 부여했다. 지난 8월 13일 개교한 새미 리 초등학교는 찰스 H. 초등학교(2006년), 김영옥 중학교(2009년)에 이어 남가주에 한인 이름을 딴 세 번째 공립학교다. 또한 LA한인타운 최초의 매그닛 초등학교다. 모든 졸업생들에게는 최대 16점의 매그닛 포인트가 주어져 매그닛 중학교에 지원하는 데 도움이 되고 의학실험실, 테크놀로지 실험실, 웰빙 연구실험실 등이 따로 갖춰져 있어 미래의 의료 및 건강과학 전문가를 배출하는 산실이 될 것이라는 게 교육 관계자의 설명이다. 새미 리 박사는 아시아계 미국인 최초로 1948년 런던 올림픽과 1952년 헬싱키올림픽에 다이빙 미국 대표로 출전해 연속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수정 기자 [email protected]

2013-11-12

[현장에서 바라본 사람과 교육] 한국 향한 일편단심…새미 리 박사

오는 8월 LA에 새미 리(사진) 박사의 이름을 딴 Dr. Sammy Lee Elementary가 개교한다. 찰스 H. 김 초등학교'와 '김영옥 중학교'에 이어 3번째 한국인의 이름을 딴 학교며 특히 생존 인사의 이름을 따서 명명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한다. 이는 바로 새미 리 박사가 살아온 인생 궤적이 얼마나 귀감이 되며 한국인과 미국인의 긍지를 높여주는 것인지 단적으로 설명해준다. 뉴욕 타임스는 한국계 미국인(Korean American)인 새미 리를 가장 '미국인다운 미국인'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미국사회에 기여한 롤 모델이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다. 수많은 이민자들이 여러 나라로부터 와서 살고 있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면서 당당한 미국인으로 귀감이 되기는 쉽지 않다. 리 박사는 1920년 캘리포니아 프레즈노에서 한국에서 이민 온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일제 아래서 하와이로 끌려와 사탕수수 이민노동자로 타국의 삶을 시작했다. 노예와 다름없는 삶을 살았던 부모는 어린 리 박사에게 철저하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며 일제의 무자비한 침략과 탄압을 주지시켰다. 1900년대 초 미국으로 이민 와 온갖 차별을 받았던 아버지는 의사와 같은 직업을 가져야만 사회에서 존경받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해서 아들에게 의사가 될 것을 당부했다. 그러나 아들은 수영선수가 되고 싶었다. 그 당시는 동양인이나 흑인에겐 1주일에 한번 만 수영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며, 황인종이나 흑인이 수영장을 다녀간 후에는 수영장 물을 교체할 정도로 인종차별이 심했었다. 이와 같은 극심한 인종차별도 수영과 다이빙을 향한 소년의 열정을 꺾을 수는 없었다. 수영 중에서도 다이빙이 소년에겐 가장 큰 매력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아들을 위해 열심히 살아온 아버지의 꿈을 버릴 수 없었던 그는 잠시 다이빙을 접고 의대에 들어갔다. 의사가 된 뒤에도 그는 올림픽의 꿈을 접지않았다. 꾸준한 연습으로 오직 실력만이 인정받을 수 있는 스포츠의 세계에서 드디어 그는1948년 런던 올림픽 다이빙에 출전, 플랫폼에서 금메달, 스프링보드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미국에서 아시아계로는 처음으로 금메달을 딴 선수다.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도 출전, 다시 플랫폼에서 금메달을 따며 올림픽 다이빙 사상 최초의 2회 연속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당시 사회적인 인종차별이 오히려 그에겐 더 큰 동기부여가 된 것같다. 그렇게 다이빙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던 그는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군의관으로 자원 입대하여 전장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리 박사는 또한 그가 갖고 있던 스포츠계의 영향력을 십분 활용해서 동계올림픽을 평창에 유치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1964년 도쿄올림픽 때 당시 새미 리 박사는 미국선수단의 코치였고 국제심판이었지만 미국선수단 보다 2주일이나 먼저 일본으로 가서 자비를 써가면서 한국선수들과 코치들을 지도했다. 부모의 나라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한국인이라는 본인 스스로의 철저한 정체성을 확고히 했기에 가능했다. 새미 리박사는 다이빙 코치의 전설로 통한다. 그로부터의 지도는 '금을 낳는다'란 말이 있을 정도다. 1984년 LA,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연속해서 금메달을 획득한 '그레그 루가니스'가 바로 새미 리 박사의 제자이다. 한국인들이 새미 리 박사를 존경하는 이유는 집념으로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고 승리한 스포츠 정신을 뛰어 넘어 한국인으로서 조국에 대한 그의 사랑을 우리가 느끼고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문의:(310)540-6505

2013-07-21

[중앙 칼럼] '새미 리'를 기억할 특별한 이유

#. 이달 초 LA한인타운 외곽에 위치한 한 레스토랑에서 열렸던 웬디 그루엘 시장 후보 기금모금 행사장. 북적거리는 행사장 한 켠에서 프로그램 순서를 지켜보고 있을 때 모니카 가르시아 LA통합교육구 교육위원장과 마주쳤다. 행사 시간보다 다소 늦게 도착했던 그녀는 서 있을 자리를 이리저리 둘러보다 공간이 넉넉했던 행사장 끝으로 걸어와 자리잡은 것이다. 짧게 안부 인사를 나누고 행사취재를 마무리하려는데 가르시아 교육위원장이 갑자기 "새미 리 박사를 아느냐?"고 넌지시 질문했다. 가르시아 교육위원장은 할 말이 있는 듯 했다. 마침 한달 전 실종사건이 발생했던 일도 있던 데다 공화당전국위원회(RNC)에서 공로상을 수상하면서 인터뷰도 했기에 기억나는 대로 설명을 해주고 이유를 물었다. "한인타운에 좋은 소식을 줄 수 있을 것 같다"며 웃기만 할 뿐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이어진 재촉과 추궁에 못 이기는 척 "그의 이름을 딴 학교가 곧 생기게 된다. 아직 안건으로 상정되지 않은 상태라 비밀이지만 안건은 통과될 것"이라고 귓속말로 알려줬다. #. 새미 리 박사 초등학교 명명안은 두달 전부터 비밀스럽게 추진되고 있었다. 2006년과 2009년 각각 찰스 H. 김 초등학교와 김영옥 중학교를 탄생시켰던 민병수 변호사와 알렉스 차 변호사, 홍연아 윌셔센터-코리아타운 주민의원, 조니 박 카페 맥 대표, 세계한인교육자총연합회(IKEN) 관계자들이 주도하고 있었다. 이미 두 차례나 교명안을 통과시켰던 노하우를 갖고 있었기에 이번에는 조금 수월하게 일이 진행됐다는 민 변호사는 "그렇지만 안건이 상정되기도 전에 커뮤니티에 내용이 공개됐다가 실패하면 잘못된 정보를 줄 수 있기에 확정되기 전까지는 조심스러웠다"고 전했다. #. 이들이 새미 리 박사를 교명으로 추천한 건 LA 뿐만 아니라 미국내 한인 사회에 한인 영웅을 알리기 위해서다. 인종차별을 딛고 올림픽에 두번이나 참가해 금메달을 따낸 새미 리 박사의 이름을 더 늦기 전에 알려야 한다는 민 변호사의 사명감도 있었다. 민 변호사는 "지금의 한인 커뮤니티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운동을 하고 싶어도, 결혼하고 싶어도, 공부하고 싶어도, 집을 사고 싶어도 피부색 때문에 할 수 없는 그 마음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60~70년대 이민생활을 들려줬다. 지난 14일 새미 리 초등학교 명명안이 통과되자 흑인 마거린 라모트(73) 교육위원이 눈물을 흘린 것도 그런 시간에 대한 기억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인종차별에 대한 인식이 없던 그 시절에 차별을 딛고 승리하고 목표를 이룬 새미 리 박사의 인생을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며 "김영옥 대령처럼 돌아가시고 난 후 영웅으로 추대하는 것보다 우리 옆에 계실 때 그의 업적을 알리는 것이 한인사회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 새미 리 박사(93)는 지난 14일 '새미 리 초등학교 명명안'이 통과되자 아버지(이순기 작고)에게 공을 돌렸다. 그는 "한인으로서 뿌리를 잊지 말고 노력하라는 아버지의 가르침 때문에 다이빙 연습도, 의대 공부도 치열하게 했다. 어려운 순간을 격려해주고 이끌어준 부모님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새미 리 박사는 이어 "한인사회가 이제 내게 새로운 꿈을 줬다. 이 학교에서 배운 학생들이 미국사회를 이끌어가는 인재로 성장하도록 설레는 마음으로 지켜보겠다"며 활짝 웃었다.

2013-05-22

[사설] '새미 리 초등학교' 명명의 의미

올림픽 영웅 새미 리 박사의 이름을 딴 초등학교가 탄생했다. LA통합교육구는 1가와 웨스토모어랜드에 개교하는 초등학교의 이름을 '새미 리 박사 의학 및 보건학 매그닛 초등학교'로 명명했다. 지난 2006년 찰스 H. 초등학교, 2009년 김영옥 중학교에 이어 3번째 쾌거다. 교명 프로젝트를 추진했던 '프렌즈 오브 새미 리 박사'의 민병수 변호사는 "새미 리 박사가 한인들의 자랑스러운 영웅이면서 동시에 주류사회에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어서 학교 이름으로 채택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새미 리 박사는 인종차별을 극복하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 특히 이번 교명 선정에는 생존 인물의 이름은 가급적 피한다는 불문율을 깨고 새미 리 박사로 명명돼 더욱 뜻이 깊다. 새미 리 박사의 영웅적인 업적이 교명 채택에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추진단체의 조직적인 활동도 주효했다. 찰스 초등학교와 김영옥 중학교 교명 채택 과정에서 쌓인 노하우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새미 리 박사 교명채택안'을 만장일치로 끌어 낼 수 있었다. 또한 교명 프로젝트의 관계자들이 당분간 LA코리아타운 지역에 학교가 건립될 계획이 없는 상황에서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자세로 최선을 다한 것도 성사에 일조를 했다. 교명 선정 과정에는 각 분야에서 노력한 단체와 인물들의 공로가 컸지만 성사 이면에는 높아진 한인커뮤니티의 위상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예전에는 한인사회 건의사항이나 의견을 내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이제는 주류사회에서도 우리의 목소리를 경청하게 됐다. 한인의 이름으로 학교명이 정해지는 것은 2세들에게 무한한 자긍심을 주게 될 것이다. 교명 추진 프로젝트 관계자와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2013-05-15

"모든 학생들이 업적 배우고 기리게 될 것"…'새미 리 박사 매그닛 초등학교' 탄생하던 날

'새미 리 박사 의학 및 보건학 매그닛 초등학교'의 탄생은 인종 차별을 딛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된 한인 이민자의 자손을 미국의 영웅으로 다시 한번 조명하는 계기가 됐다. 14일 표결을 앞두고 한인 커뮤니티가 준비해 간 팜플렛을 통해 새미 리 박사의 생을 읽은 LA통합교육구(LAUSD) 교육위원회 위원들은 눈물을 흘리며 숙연한 모습을 보였다. 이들은 1920년 하와이 사탕수수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새미 리 박사가 심한 인종차별을 이겨내고 1948년 런던올림픽과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미국 대표로 출전해 다이빙 부문에서 금메달을 딴 스토리에 박수를 보냈다. 표결직후 단 위에서 내려와 한인 참석자들을 일일이 포옹한 마거릿 라모트 교육위원은 "이렇게 훌륭한 영웅을 알게 돼 기쁘다"며 "이런 영웅이 있는 한인 커뮤니티가 부럽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모니카 가르시아 LAUSD 교육위원회 위원장은 "새미 리 박사는 한인 커뮤니티의 영웅일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영웅"이라며 "앞으로 LA의 모든 커뮤니티와 미래의 기둥들인 학생들이 그의 업적을 배우고 기리게 될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새미 리 박사 의학 및 보건학 매그닛 초등학교'를 탄생시키는 데 앞장섰던 '프렌즈 오브 닥터 새미 리'의 민병수 변호사는 "한인 커뮤니티의 지원에 감사하다"며 "이렇게 기쁜 소식을 새미 리 박사에게 전해줄 수 있게 돼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알렉스 차 변호사는 "김영옥 중학교 이후 3년 만에 한인 커뮤니티의 힘을 다시 보여줄 수 있게 됐다"며 "새미 리 박사의 이름이 빛날 수 있도록 학교 운영도 관심을 갖고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새미 리 박사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내 이름을 단 학교가 탄생한 게 꿈만 같다. 아무쪼록 내 이름을 단 학교에서 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해 꿈을 이루길 간절히 바란다"며 기뻐했다. 한편 가르시아 위원장과 프로젝트 관계자들은 조만간 새미 리 박사와 한인 커뮤니티를 초청한 축하 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장연화 기자

2013-05-14

'새미 리 초등' 이름 확정…LA교육위 만장일치 승인

올림픽 금메달 영웅 새미 리 박사(93)의 이름을 딴 초등학교가 탄생했다. LA통합교육구(LAUSD) 교육위원회는 14일 1가와 웨스트모어랜드에 개교 예정인 초등학교 이름을 '새미 리 박사 의학 및 보건학 매그닛 초등학교'로 명명하는 안을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한인 이름을 단 학교가 생긴 건 지난 2009년 김영옥 중학교에 이어 3년 만이다. 새미 리 매그닛 초등학교의 탄생으로 남가주에 한인 이름을 단 공립학교는 찰스 H. 초등학교(2006년)를 포함해 3곳으로 늘었다. 새미 리 박사는 이날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너무 기쁘고 영광스럽다. 한인으로서 뿌리를 잊지말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른 결과가 아닌가 싶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명명안을 지원했던 미셸 스틸 박 조세형평국 부위원장도 "친구였던 새미 리 박사와 김영옥 대령의 이름이 양대 산맥처럼 한인 커뮤니티의 이름을 빛내는 학교로 남았다"고 반겼다. 명명안 프로젝트를 추진한 '프렌즈 오브 새미 리 박사'의 민병수 변호사는 "새미 리 박사의 공로를 주류사회가 인정했다"〔〈【무엇보다 한인 지도자들의 이름을 단 공립학교가 3개가 나오며 한인 커뮤니티의 위상을 높였다】〉〕며 "한인들의 노력이 차세대 발전에 큰 힘이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표결에는 민 변호사 외에 윌셔센터-코리아타운주민의회(WCKNC) 알렉스 차 수석부회장과 홍연아 의원, 자니 박 카페 맥 사장, 세계한인교육자총연합회(IKEN) 나영자·조병욱·이혜자 이사, 한미연합회(KAC) 래리 정 회원, 준 서 인턴이 참석해 지켜봤다. 장연화 기자

2013-05-14

공화당 전국위, 새미 리 박사에 공로상

내일(11일)부터 사흘동안 할리우드에서 열리는 공화당전국위원회(RNC) 춘계회의에서 한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새미 리(사진) 박사와 전 가주 하원의원 폴 바나이 전 연방법무부 범죄피해자 국장 찰스 하우스 전 공화당협회 위원장 티르소 델 훈코에게 '공로상'을 받는다. 미셸 박 스틸 가주 조세형평국 부위원장의 주도로 진행되는 이날 행사는 남가주 내 아시안 커뮤니티와 공화당과의 관계를 좁히는 가교가 될 전망이다. 박 부위원장은 또 오후에는 '아시안 커뮤니티와 함께 하는 지원활동'이라는 주제로 타운홀 미팅을 개최한다. 미셸 박 부위원장은 "그동안 커뮤니티를 위해 일하고 공화당의 이름을 빛내준 선구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시상식을 마련했다"며 "한인 커뮤니티의 롤 모델이자 영웅인 새미 리 박사가 첫 수상자로 선정돼 기쁘다"고 설명했다. RNC는 또 춘계회의에 앞서 한인 제이슨 정씨와 중국계 스테판 퐁씨를 아시안 커뮤니티를 전담하는 지역 디렉터로 임명했다. 이들은 앞으로 공화당 협회의 정책을 아태 커뮤니티에 알리고 관련 의견들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라인스 프리버스 RNC 의장은 성명서에서 "이들의 경험과 지식은 공화당이 아태계 커뮤니티가 겪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프리버스 의장은 지난 2월에도 남가주를 방문해 아태 커뮤니티 리더들과 만난 바 있다. 이에 대해 박 부위원장은 "민주당이 있는 LA에서 춘계회의를 진행하기로 결정한 것은 그만큼 한인 등 아시안 커뮤니티에 다가서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앞으로도 아시안 커뮤니티와의 관계가 더 친밀해지도록 힘쓰겠다"고 강조했다. 장연화 기자 [email protected]

2013-04-09

'실종 소동' 새미 리 박사…"걱정해주신 한인들께 감사"

"걱정해준 모두에게 감사하다." 2일 실종 소동을 벌인 '수영계의 전설' 새미 리(92) 박사가 본지와의 통화에서 한인들에게 고맙다는 뜻을 전했다. 리 박사는 "(실종과 관련) 이렇게 일이 커질 줄 몰랐다. 아프지도 않고 모두 괜찮다"라고 말했다. 리 박사의 아내 로잘린씨는 "앞으로 남편이 혼자 운전해서 수영장에 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번 일로 (리 박사와 관련된) 일상생활 관리에 더욱 조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리 박사는 가벼운 치매와 심장질환 당뇨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미 리 박사는 지난 1일 오후 3시쯤 파운틴 밸리의 로스 카바예로스 스포츠 클럽에 수영을 하러 헌팅턴 비치 자택을 나선 이후 30시간 이상 행방을 알리지 않아 실종자 명단에 올랐다. 수사당국은 모하비 인근 주유소와 웨스트민스터의 베스트바이 스튜디오 시티 주유소에서 결제된 리 박사의 신용카드 조회기록을 따라 차량 수색을 펼쳐 피코 리베라 지역 워싱턴 불러바드에서 운전 미숙으로 교통체증을 만든 리 박사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당시 신고를 받고 출동한 피코 리베라 경찰서 조 멘도사 루테넌트는 "리 박사는 도로 한복판에서 갑자기 방향을 바꿔 커브길에 차를 멈췄다. 그를 걱정한 운전자들이 경찰서에 신고 리 박사가 가족들과 만날 수 있었다"라며 "약간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이긴 했으나 건강해 보였다"라고 말했다. 경찰서에서 가족을 만난 리 박사는 "내가 실종됐는지 몰랐다"라며 우스갯소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혜영 기자

2013-04-03

'다이빙 전설' 새미 리 박사 실종

수영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한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새미 리(92.사진) 박사가 실종됐다. 헌팅턴비치 경찰국은 2일 리 박사가 는 지난 1일 오후 3시 파운틴밸리의 로스 카바예로스 스포츠 클럽에서 수영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선 이후 실종 상태라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리 박사는 치매(dementia) 증세와 당뇨 심장질환을 앓고 있다. 미치 오브라이언 루테넌트는 "2일 오전 8시30분쯤 LA와 라스베이거스의 중간 지점인 모하비 인근 주유소에서 리 박사가 신용카드를 사용한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감시카메라 확인 결과 리 박사가 직접 주유를 한 것으로 나타나 납치 등의 사건에 연루됐을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리 박사의 차량은 2011년형 머세이디스 벤츠 300이며 차량번호는 '2GOLDS'다. 헌팅턴비치 경찰국은 모하비 및 인근 지역 경찰과 공조해 리 박사의 차량을 수배하는 등 행방을 쫓고 있다. 1920년 프레즈노에서 태어난 리 박사는 1948년 런던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다이빙 플랫폼 부문 금메달을 획득해 다이빙 역사상 최초로 2연속 금메달 기록을 수립했다. 한편 리 박사의 며느리인 지나 리 씨는 "아버님이 복용하는 당뇨약을 갖고 있지 않아 더 걱정된다"라고 말했다. ▶제보:(714)960-8811 헌팅턴비치 경찰국 구혜영 기자

2013-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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